필사하기 좋은 시1 [여행] 박경리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여행 박경리 나는 거의 여행을하지 않았다 피치 못할 일로 외출해야 할 때도 그 전날부터 어수선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나다니기를 싫어한 나를 구멍지기라 하며 어머니는 꾸중했다 바깥 세상이 두려웠는지 낯설어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도 남 못지 않은 나그네였다 내 방식대로 진종일 대부분의 시간 혼자서 여행을 했다 꿈속에서도 여행을 했고 서산 바라보면서도 여행을 했고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서억서억 톱이 움직이며 나무의 살갗이 찢기는 것을, 그럴 때도 여행을 했고 밭을 맬 때도 설거지를 할때도 여행을 했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혹은 배를 타고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보다 은밀하게 내면으로 내면으로 촘촘하고 섬세했으며 다양.. 2023. 4. 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