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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시2

[바나나] 임영석 - 나, 이제부터 삐딱하게 살기로 했다 바나나 임영석 열매라 해서 제가 떠나온 고향이 왜 그립지 않겠는가 바나나가 쉽게 상해 걸이대를 사서 걸어 놓으니 저도 제 어미의 품이 그리웠는지 그만 덥석 안기어 며칠을 잠만 자고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 앞쪽에서 바라보면 초승달 같고 뒤쪽에서 바라보면 그믐달 같다 초승달처럼 떠오르는 생각과 그믐달처럼 잊고자 하는 생각이 바나나의 몸을 들락날락하는 것 같다 바나나 저도, 설익은 몸 억지로 익혀내고서 얼마나 고통이 심했겠는가 여기가 어미의 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꾸역꾸역 어미의 생각을 제 몸에 구겨 넣고 있는데 나는 지금 바나나의 고통을 하나씩 벗겨 먹는 중이다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던 많은 시집 중에서 제목부터 남다르게 유독 눈에 띄었던 시집입니다. 요즘 지난 날들을 곱씹어 보니 너무 다람쥐 쳇바퀴 돌듯.. 2023. 4. 4.
[즐거운 편지] 황동규 - 필사하기 좋은 시 사랑고백시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옆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2023.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