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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픈이야기

[바나나] 임영석 - 나, 이제부터 삐딱하게 살기로 했다

by 골드핑거 2023. 4. 4.

바나나

                                                               임영석

 

열매라 해서 제가 떠나온 고향이 왜 그립지 않겠는가

바나나가 쉽게 상해 걸이대를 사서 걸어 놓으니

저도 제 어미의 품이 그리웠는지

그만 덥석 안기어 며칠을 잠만 자고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 앞쪽에서 바라보면 초승달 같고

뒤쪽에서 바라보면 그믐달 같다

초승달처럼 떠오르는 생각과

그믐달처럼 잊고자 하는 생각이

바나나의 몸을 들락날락하는 것 같다

바나나 저도, 설익은 몸 억지로 익혀내고서

얼마나 고통이 심했겠는가

여기가 어미의 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꾸역꾸역 어미의 생각을 제 몸에 구겨 넣고 있는데

나는 지금 바나나의 고통을 하나씩 벗겨 먹는 중이다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던 많은 시집 중에서 제목부터 남다르게 유독 눈에 띄었던 시집입니다.

요즘 지난 날들을 곱씹어 보니 너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에만 몰두하며 살아왔구나 마음이 헛헛해져서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시집의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바로 꺼내들었어요.

시인의 지난 삶과 생각들이 진솔하게 시에 담겨 있어서 읽는 내내 공감하며 행복하게 읽었답니다.

여러 시 중에 바나나가 어미 품에 덥석 안기듯 걸이대에 걸려지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바나나가 어딘가 너무 짠하게 여겨지던 차에 고통을 벗겨 먹는다는 부분에서 살며시 웃음이 새어 나왔답니다.

너무 인상깊어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임영석님의 바바나입니다 :)

 

 

 

시산맥사 나 이제부터 삐딱하게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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